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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는 사주팔자나 관상 등에 정해져 있어
 
신한국뉴스 임연식기자 기사입력  2015/02/02 [09:10]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一切唯心造). 마음을 비워라. 마음을 비운다는 그 마음조차도 비워라. 형상에 집착하여 머무르지 마라. 육체나 사물에 집착하지 않으면 번뇌가 사라져 해탈을 얻는다.” 마음 즉 지각(知覺)이 그 사람의 행동을 좌우하고, 희로애락에 집착하지 않고 물욕을 버리면 마음이 평화롭게 된다는 뜻일 뿐, 인간의 마음 씀씀이에 따라 부귀한 사람과 빈천한 사람이 뒤바뀔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도 “마음을 곱게 쓰면 복을 받는다. 세상만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노력하면 된다.”고 하는 사람은 물론 “사주팔자를 잘 타고난 것보다는 관상 좋은 사람이 더 성공할 확률이 높고 관상이 좋은 사람보다는 마음을 바르게 잘 쓰는 사람이 더 성공할 확률이 높다(八字而不如觀相,觀相而不如心相).”고 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 한마디로 “성공과 실패 또는 부귀와 빈천은 마음먹기에 따라 뒤바뀔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주팔자나 관상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사주팔자와 관상 그리고 심상 즉 인간의 본심(本心)을 바탕으로 보면 오해가 틀림없다. 하늘 즉 해, 달 ,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 등이 자전과 공전을 거듭하며 그 사람에게 준 기질(氣質)을 사주팔자라고 하며, 그 사람의 마음이 머무는 집 즉 육체를 관상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사주학에서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은 천체의 자전과 공전의 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기도나 수행을 통해 초월해탈(超越解脫)한 성자라고 해도 예외로 여기지 않는다.  

부귀는 사주팔자나 관상 등에 정해져 있어
“죽고 사는 것은 명(命)에 있다(死生有命).”라고 하는 것을 운명학계에서는 “죽고 사는 것은 사주팔자나 관상 등에 정해져 있다.”라고 하며, “부귀는 하늘에 있다(富貴在天).”라고 하는 것을 운명학계에서는 “부귀는 사주팔자나 관상 등에 정해져 있다.”라고 한다.
인간의 본성이 선함에는 변화가 없듯이 사주팔자와 관상의 격국 즉 그 사람 그릇의 크기는 어떤 경우에도 변하지 않고, 그 사람의 지식에는 다소(多少)의 변화가 있듯이 사주팔자와 관상에는 길흉화복의 변화가 모두 나타난다. 아무리 많이 배우고 아무리 많은 노력을 해도 작은 그릇으로 출생한 사람이 큰 그릇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다만 많이 배우고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하면 자신이 타고난 그릇을 채울 수 있지만 배우지도 않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 자신이 타고난 그릇마저도 채우지 못한다. 예를 들면 국회의원 팔자로 태어난 사람이 많이 배우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국회의원은 될 수 있지만 대통령은 되지 못한다는 얘기다. 
 “하늘의 명령(天命)은 그 누구도 어기지 못한다. 타고난 팔자는 속이지 못한다.”라고 하는 등의 속담도 여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사주팔자나 관상이 나쁜 사람은 마음도 나쁘게 쓰고 그 사람이 마음을 나쁘게 쓸 때는 사주팔자의 운이 나쁘기 때문에 관상도 나쁘게 변한다.
사주팔자와 관상이 곧 심상인 셈이다. 그러므로 심상 즉 마음 씀씀이가 사주팔자나 관상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견강부회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어찌 심상 즉 사람의 마음이 사주팔자나 관상밖에 존재할 수 있겠는가?
부귀영화 누리려면 마음을 비워라?
그 사람의 마음 씀씀이와 노력에 따라 재벌 또는 노숙자가 되는 것이라면 부귀를 누리는 사람은 모두 마음을 잘 쓰고 노력을 많이 한 것이 되고, 가난한 사람은 모두 마음을 잘못 쓰고 노력도 하지 않은 것이 된다. 재벌가의 후손들이 무슨 마음을 그리 잘 쓰고 노력을 많이 해서 재벌 2. 3세가 되었다는 말인가? 아마도 지혜가 많은 사람이 부귀를 누리는 것이라면 명문대 출신은 모두 부귀를 누렸어야 된다.
그리고 성인의 반열에 오르신 안연이 무슨 마음을 나쁘게 쓰고 노력을 하지 않아 쌀겨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고 32살에 죽었으며, 사람의 간을 꺼내 먹은 도척은 무슨 마음을 잘 쓰고 노력을 많이 해서 배불리 먹고 또 92세까지 살았다는 말인가? 
이렇기 때문에 “마음 또는 노력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은 인류의 역사는 물론 현실을 부정하는 모순이 된다. <중용>에서 “마음의 허령과 지각은 하나일 뿐이다(心之虛靈知覺一而已矣).”라고 했으며, 맹자(孟子)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도 되게 하는 것은 하늘의 뜻이며 그를 부르지 않았는데도 이르게 하는 것은 하늘의 명령(命) 즉 운명이다(孟子曰…莫之爲而爲者, 天也, 莫之致而至者, 命也)"라고 말씀하셨다.
“허령(虛靈)은 마음의 체(體)가 되고 지각(知覺)은 마음의 용(用)이 되며, 가난을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나지 못하고 늙고 병들어 죽지 않으려고 해도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은 모두 천명 즉 운명 그렇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신한국뉴스 임연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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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2/02 [09:10]  최종편집: ⓒ 신한국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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